쓰고싶은거

덕후가 되는 이유.

kimZ 2024. 12. 18. 16:44

나는 소년물이 제일 좋아.

 

  글을 쓰며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하나의 주제가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으면 다른 주제의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번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해도 같은 결말이 되거나 같은 흐름으로 진행으로 쓰게 된다. 그래서 그냥 해소될 때까지, 다 털어 버릴 때까지 그 글을 쓰려고 한다. 그건 나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방학이 되면 방에서 하루종일 애니를 정주행 했고 만화책을 읽어도 하루 안에 완결까지 다 보았다. 옛날 만화는 요즘처럼 난잡함이 덜했고 소년물, 성장물이 많았다. 소년물은 평범하거나 그보다 부족한, 결핍이 있는 주인공이 어떤 사건들과 주변인들을 통해 , 아이를 벗고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그런 내용이다. 나는 소년물을 좋아했다. 로맨스 애니메이션도 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 만화, 애니를 주로 봤다. 그 시절의 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피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봤던 것 같다. 

 

  소년만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혼자에서-여럿이 되기 때문'이다. 홀로 외로웠던 주인공이 친구를 만나 마음속 벽을 허물고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 내가 먼저 변하는 게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믿어주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내가 변해가고 그 변화로 인해 스스로 그어놨던 본인과 타인의 경계를 흩트리며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 점점 찬란하게 빛나는 주인공, 강해지는 것보다 행복해지는 모습이 내 마음을 언제나 울렸다. 

 

  나는 어린 시절 언제나 혼자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여러 사람들 가운데 있고 싶었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주인공이 강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강해지고 싶어 다른 사람의 앞에서는 울지도 않고 강하게 보이려 호랑이인척 고양이 하앍질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만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만화처럼 극적인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한 편의 작화로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저  잔잔함 속에 더욱 잔인하고 냉정한 기나긴 하루만이 존재한다. 그런 현실을 겪어내고 다시 소년물을 보니 그 시절 내가 원하던 것이 겉으로 보이는 강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마음, 의심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가는 그 굳은 심지를 갖길 원했단 걸 알게 되었다. 그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웃고, 그들과 함께 존재하고 싶었던 거였다. 홀로 강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나를 받아주는 빛나는 동료들이 있어서 내가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그런 경험을 원했다. 말이 거창하지만, 그저 나를 지지해 주는 나의 편을 원했던 것이다. 언제나 동료들과 웃는 주인공, 행복감으로 충만해 보이는 그 순간을 원했던 것이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주인공을 보는 게 소년물의 묘미이기도 했다. 

 

  어느 날 보면 내 인생도 소년물에서 보던 주인공 같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만화와 같이 축약되어 있지 않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젠가 아주 긴 하루의 끝에 보면 나도 누군가를 만나고 내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었고 그래서 성장했던 순간들이 멋진 서사로 보이지 않을까? 그로 인해 나도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인생으로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