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아서 전하기

2024. 11. 15. 21:28쓰고싶은거

온전한 축하를 건넨다는 것.

 

  몇 달 전 시누이와 사촌 시누이를 같이 만났다. 내가 연애하던 때부터 만나던 이 모임은 결혼 후에도 불편함 없이 이어졌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남편 없이 셋이 만나던 날이었다. 학원을 하는 두 시누이는 학원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나는 요즘 삶의 화두인 난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술을 해야 할지, 기대는 매번 하고 있는데 걱정이 된다는 등의 말이었지만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하 호호 웃으며 끝맺은 말은 며칠 뒤 후회로 돌아왔다. 사촌 시누가 sns에 자신의 둘째 임신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 소식을 보고 난 "눈치 없는 난임."이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말도 아닌데 굳이 난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 걸. 그날이 임신 사실을 알리려던 자리는 아니었을까? 괜히 그 아이가 눈치 보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날 그 애를 보며'혹시 임신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랬으면 말했겠지 하는 말로 나의 질투하는 마음을 덮었다. 그날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다. 임신 사실은 몰랐지만, 평소 눈치가 빠르던 나는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1년 동안 힘들었던 난임에 대해 굳이 이야기했다. 요즘 내 삶의 제일 큰 문제 이긴 하지만 예전의 나였으면 눈치를 보고 꺼내지 않았을 말이었다. 그런 못난 나의 마음을 마주 하자 눈물이 났다.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상황에 놓인 게 싫었고 SNS 글을 보고도 축하한 다는 말 보다 '나는 왜?'라는 문장을 먼저 생각하는 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나는 감정에 무딘 사람이었다. 아니면 상처받을까 봐 감정을 무시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서 축하를 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으로 배웠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나는 많은 감정을 배운다. 알고 있었지만 살아내지 못했던 감정들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단어들이, 그 감정들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위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건네기 어려운 일이라면 어중간하게 건네는 축하는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온전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날 보며 낯선 나에게 스스로 얼마나 상처받았던가. 그날의 감정 또한 '나'임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눈물과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너무 축하해! 둘 다 딸이라니 너무 좋겠다." DM을 보내고 나서도 다 지워내지 못한 못난 마음에, 어릴 때처럼 순수하게 좋고 싫음, 그리고 부러움과 질투 또는 기쁨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축하를 건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나에 대해 배운다.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나의 모습들이 어느 순간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런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런 나를 인정해 주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나의 온전한 마음을 전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았는데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나 조차도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다. 세상에 쉬운 것 같은 모든 것 중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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