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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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고 슬픈 건 아니다.
마음의 문제 이번 가을에는 단풍이 보고 싶었다. 아주 빨갛게 물든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이 보고 싶었다. 올 해는 계속 따듯했어서 그런지 새빨갛고 샛노란 잎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날이 조금 추워지자 노란 잎의 은행나무는 많이 보여도 단풍나무는 거무죽죽한 것이 빨간 단풍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나뭇잎이 붉은빛의 옷을 입어도 완전히 빨간 예쁜 단풍이 보고 싶었다. 결국 남편과 남이섬까지 가서 빨간 단풍은 잔뜩 보고 왔다. 아쉽다 생각하며 일상을 시작했는데 출근하며 매일 지나는 길에서 눈을 사로잡는 나무가 보였다. 초록빛에서 노랗게 물들며 붉은색을 내는 나무를 보며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퇴근한 남편에게 "전철 타러 가는 길목 편의점 앞에 있는 그 나무 너무 예쁘지 않아? 나는..
2024.11.25 -
내향인은 아니에요.
그냥 귀찮을 뿐인데! 집 배터리 일 뿐인데! 10년 전 대학에 다닐 때 문제집만 한 두께의 MBTI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성향은 IS--이었다. MBTI가 유행하면서 요즘은 핸드폰으로 쉽게 검사를 하길래 나도 다시 검사를 해봤다. 지금 내 성향은 INFJ가 되어 있었다. 'I'빼고는 10년 전 했던 검사결과가 전부 다 바뀐 것 같은데, 결정되는 퍼센트를 보니 거의 49%, 51% 차이로 성향이 결정이 됐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다른 성향이 다 변해도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I성향", 사람들은 그 성향을 보면 소심한 사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MBTI를 말하면 다들 "네가 I라고?" 하며 놀라곤 하는데, 나는 MBTI 네 개의 알파..
2024.11.21 -
멍청한 고백
감정을 흘려보내는 법 최근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을 겪었다. 짧은 임신기간을 종료하게 된 것이다. 마음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라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순간을 겪으면서도 출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생계를 위해 바로 일을 해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오늘까지만 슬프고 힘들자. 오늘만 울고 내일부터는 힘을 내도록 하자!' 그 순간에는 그게 정답처럼 느껴졌다. 그게 어른스럽게 감정을 잘 보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울지 않았지만 점점 예민해졌다. 예민하고 피곤하고 무기력해졌다. 짜증이..
2024.11.19 -
불안을 마주하기
우울을 대하는 자세 모 아니면 도라는 말로 모든 걸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간혹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종종 출처 모를 우울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어릴 때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그저 울기만 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우울감이 '어떤 불안감'에서 온 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되었다. 그 불안이라는 것은 나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그 두려움은 불안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이게 되는 감정은 다시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모르던 나는 불규칙적이고 갑작스러운 우울감에 빠져 다시 불안하게 되는 불안의 고리에 갇..
2024.11.16 -
마음을 담아서 전하기
온전한 축하를 건넨다는 것. 몇 달 전 시누이와 사촌 시누이를 같이 만났다. 내가 연애하던 때부터 만나던 이 모임은 결혼 후에도 불편함 없이 이어졌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남편 없이 셋이 만나던 날이었다. 학원을 하는 두 시누이는 학원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나는 요즘 삶의 화두인 난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술을 해야 할지, 기대는 매번 하고 있는데 걱정이 된다는 등의 말이었지만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하 호호 웃으며 끝맺은 말은 며칠 뒤 후회로 돌아왔다. 사촌 시누가 sns에 자신의 둘째 임신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 소식을 보고 난 "눈치 없는 난임."이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말도 아닌데 굳이 난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 걸. 그날이 임신 사실을 알리려던 자리는..
2024.11.15 -
우리가 불편을 극복하는 법
러키 비키잖아, 액땜했다. 오늘은 수능 날이다. 수능은 온 세대에 걸쳐 영향을 주는 사건인 거 같다. 수능을 보는 이들, 수능 덕에 한 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쉬는 이들, 자식의 수능을 응원하는 이들. 우리 삶에 전반적인 부분에서 수능이라는 단 하루 그 몇 시간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수능은 한국인의 대부분의 인생에서 대단한 사건인 것이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한 사람이 아닌대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전철역을 가던 중 살면서 처음 새 똥을 맞았고 그러면서 "수능 같이 대단한 날에 새똥을 맞다니? 이건 무슨 징조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오늘 좋은 일이 있으려나?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살면서 처음 새똥을 수능날 맞지?"같은 행복회로를 돌렸다. 한 동안 아이돌 장원영이 한 '러..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