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다고 슬픈 건 아니다.

2024. 11. 25. 11:03쓰고싶은거

 마음의 문제

 

  이번 가을에는 단풍이 보고 싶었다. 아주 빨갛게 물든 단풍과 샛노란 은행잎이 보고 싶었다. 올 해는 계속 따듯했어서 그런지 새빨갛고 샛노란 잎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날이 조금 추워지자 노란 잎의 은행나무는 많이 보여도 단풍나무는 거무죽죽한 것이 빨간 단풍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나뭇잎이 붉은빛의 옷을 입어도 완전히 빨간 예쁜 단풍이 보고 싶었다. 결국 남편과 남이섬까지 가서 빨간 단풍은 잔뜩 보고 왔다.

 

  아쉽다 생각하며 일상을 시작했는데 출근하며 매일 지나는 길에서 눈을 사로잡는 나무가 보였다. 초록빛에서 노랗게 물들며 붉은색을 내는 나무를 보며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퇴근한 남편에게 "전철 타러 가는 길목 편의점 앞에 있는 그 나무 너무 예쁘지 않아? 나는 너무 예쁘니까 오빠한테도 알려주고 싶었어, 오빠는 그렇게 예쁜 거 보면서 그런 생각 안 들었어?"하고 새초롬하게 물어보니 남편은 나에게 "그건 계속 있던 나무잖아, 매일 보지 않았어?"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러게 왜 그게 그때는 예뻐 보이지 않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뇌가 내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빨간 단풍을 봐야 해,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을 한 번은 누려야지! 하고 정해두니 다른 많은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게 됐다. 뇌를 통해 눈에 들어오던 풍경은 다르지 않은데  지천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예쁘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건 '덜 빨가니까 안 예뻐!' 하고 생각하게 했다. 근데 그 빨간 것을 보겠다는 목표하나를 벗겨내니 그저 찾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것들에서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정해둔 행복의 목표가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에 한계를 정하고 강박이 되었다.' 빨간 단풍을 못 봤으니까 나는 행복하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아.' 그렇게 정해버렸다. 그것을 보지 못해도 다른 것들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목표를 정해두고 나니 매일 행복을 실패하게 되었다. 정해둔 목표를 이룰 때까지 행복하지 못하고 그 작은 거 하나 이루지 못했다며 슬퍼했다. 그것은 내가 누릴 수 있던 많은 행복을 막고 있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을 지천에 전시해 놨는데 내 마음이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했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간에도 주변에 이렇게 누려야 할 것들이 많다. 맹목적인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어하는지 깨닫는다. 누구도 나를 제어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제어하고 한계를 정하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을 때는 슬프게 만든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슬픔인 것이 아닌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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